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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이야기

길들여진다는 것.....

by 미스오션 2012. 4. 23.

생텍쥐베리의 소설 '어린 왕자' 속에 등장하는 여우가 한 말이 생각나는 날이다.
서로에게 길들여진다는 여우의 말이 티끌 한 점 없는 하얀 벽에 시커멓고 날카로운 못이 박히듯 마음에 콕콕 와 박히는 느낌이다.
여우는 '길들여진다'는 말을 '친해진다'는 뜻이라고 했지만 글쎄, 과연 그럴까?
언제부터인가 나는 내 자신이 '주변'이라는 배경 속에 놓여있는 하나의 '정물'에 불과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만큼 주변에 길들여져서, 친해져서 혼자는 존재할 수 없는 구성물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주변의 사람들과 사물의 세세한 부분들까지 들여다 볼 수 있게 된 반면 익숙한 부분들 속에서 무디어져가고 있기도 하다.
아직 애티를 벗지 못한 그 때 보았던 주변의 모습은 지금하곤 사뭇 달랐다.
가로수 아래 보도블럭 틈새로 삐죽 나온 민들레 한 송이도 기쁨의 하나였다. 또한 놀이터 나무그늘 밑에 뻥뻥 뚫린 개미집도 주변의 일부였고 생활의 한 부분이었다.
그 뿐인가? 한여름 소나기가 던지고 간 무지개 하나는 깡충 깡충 뛸 수 있는 핑계가 돼 주었으며, 학교 가는 길의 예쁜 정원이 있던 어떤 집은 '신데렐라'를 떠올리게 했다.
그런데 지금 내가 이 모든 것들에 길들여진 지금은 그런 모든 것들이 스쳐 지나가는 바람처럼 무의미한 것들일 뿐이다.
거리의 민들레보다는 화원의 화려하고 매혹적인 향기의 꽃들에서 기쁨을 느끼며 놀이터 나무 그늘의 개미집은 잊혀진지 오래다.
또한 어릴 적 무지개를 보며 좋아했던 것이 이제는 성적표의 색깔없는 숫자만이 기뻐할 핑계가 되고 말았다.
어릴적의 색이 싱싱한 초록을 띄고 있다면 이제는 거무티티한 회색을 띄고 있는 듯하다.
'길들여진다'는 것이 아무래도 지금의 나한테는 잘못 쓰여진 것 같다.
여우는 서로에게 길들여짐으로써 서로를 더 아끼게 되고 서로가 없으면 고통스러워질 거라 했는데...
난 아무래도 잘못 길들여진 것 같다. 나 뿐만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길들여짐'을 잘못 해석하고 잘못 길들여지는 것 같다.
오늘 나는 길거리에서 떨고 있는 아주머니를 봤다. 분명 집 없는 사람임에 틀림없었다. 얼굴의 잔주름 사이에는 고생의 흔적이 역력했으며 부르튼 입술은 추위에 깎였음을 보여주었다.
난 내 스스로 나의 행동에 크게 놀랐다. 아무런 동요없이 발길을 옮기며 뒤 한 번 돌아다 보지 않는 내 자신을 느끼곤 깜짝 놀랐다. 내가 그 아주머니에게 집을 주거나 아님 음식을 주거나 하기는 어려운 일이라지만 따뜻한 말 한 마디 건네는 것이 그리도 어려웠을까? 난 또 놀랐다. 그렇게 무심히 지나치는 이는 나만이 아니었고 그 아주머니는 가을의 거리 풍경의 일부가 되어 쭈그리고 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 아주머니는 정물화의 구도 속에 놓인 하나의 사과처럼, 모인 이들의 눈길 한 번 받지 못한 채 앉아 있던 것이다.
내 자신이 이 정도로 무디어졌는지 몰랐다. 생명 앞에서도 감정이 무딜줄이야! 마치 나의 가장 불쌍한 부분을 본 듯해서 허탈하고 서글펐다.
하지만 난 오늘 다른 '주변'을 보았다. 그것은 어떤 걸인에게 동전을 집어 넣는 꼬마 아이의 예쁜 모습이었다. 그 모습은 어느 정도 내게 안도감을 주었다. 단 한 사람을 보았지만 이 세상엔 분명 더 많은 어린왕자가, 여우가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모두가 잘못 길들여진 것은 아니라는 확신이 생겼다고나 할까?
내게도 어떤 변화가 생기길 바라며 바라본 저 하늘은 잔뜩 찌뿌리고 구름이 끼어있지만 저 구름 너머에 태양이 태초에 생겨 이제까지 빛났던 것처럼 여전히 빛나고 있을거라 생각하니 괜시리 미소가 흐른다.
이제야 비로소 여우의 길들여진다는 말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구시대의 것에 길들여지며, 언제나 존재하는 것에 애착을 가지고, 새롭게 들여다 볼 때 우린 비로소 길들여진 것이다. 서로에게...
이제 길들여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디어진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고 마음으로 찾는 지혜인 듯 하다.
"눈에는 보이지 않아. 마음으로 찾아야만 해."
어린왕자의 조용한 외침이 들리는 듯 하다.
내가 진정으로 길들여지고, 마음으로 보게되고 찾게될 때, 그 때 쯤이면 길거리에서 떨고 있는 그 아주머니에게 손을 내밀 용기도 생기겠지...

생각하는 사람들의 홈에서 빌려왔슴다... http://thinkingm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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