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수학자들이 풀지 못한 어려운 문제를 척척 해결했던 수학 천재 존 내쉬는 1928년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
에서 태어났다 친구와 어울릴 줄 모르는 내성적인 그에겐 '학습 지진아'라는 딱지가 붙었고
성적표엔 '노력부족, 학습 습관 결여'라고 적히기 일쑤였다.
그러나<수학의 사람들>을 읽고 수학에 눈뜬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연필로 문제를
푸는 친구들과 달리 공식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조용히 일어나 답을 말하곤 했다
프린스턴 대락 시절엔 창조성과 독창성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며 책을 거의 읽지 않았는데, 대신 교수와
동료들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사소한 힌트 하나하나를 꼼꼼히 적어 두며 정보를 수집했다.
남을 놀라게 하려고 항상 커다란 문제점을 찾아 풀어 '문제 해결을 즐기는 친구' 로 불리던 내쉬는
1949년 '내쉬 균형(상대가 최선의 전략에 따라 행동할거라고 가정해 참여자마다 최선의 전략을 추구하
늘 것)'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은 무선주파나 석유 시추권, 목재 벌목권 같은 미실현 이익에 대한
경매를 가능하게 하는 경제학적 게임 이론의 근간을 이룬다. 스물셋에 MIT 강사가 된 내쉬는
자신의 수업을 듣던 물리학도 앨리사와 결혼했으며, 서른 살이던 1958년 포춘지는 최고의 젊은 수학자로
내쉬를 꼽았고 그의 인생길은 탄탄대로였다. 하지만 공로가 높은 수학자에게 수여되는 필즈 메달 수상자
최종 후보에서 나이가 젊다는 등의 이유로 탈락되고, 설상가상으로 정교수가 되기 직전 ' 신문에 나만
알아볼 수 있는 은하계 메시지가 실려 있다' 는 등의 정신분열 증세를 보여 교수직을 사임하고
정신병원에 들어가야 했다.
그 뒤 내쉬는 30년 동안 정신분열과 종교적 예언에 빠져 모교인 프린스턴 대학 칠판에 알지 못할
메시지를 끄적거리면서 유령처럼 떠도는 영혼의 암흑기 상태를 갖는다. 그러나 아내의 헌신적인
보살핌으로 1990년 기적적으로 서생하여 4년 뒤, 스물한 살 때 쓴 27쪽짜리 논문 '내쉬 균형 이론'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수학자가 경제학상을 받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고 사람들은 그의
인간승리에 아낌없는 갈채를 보냈다.
백발이 되어서야 광명을 보게 된 존 내쉬, 허름한 벽돌집에서 소박하게 살고 있는 그는 "일종의
휴가랄 수 있는 부당한 망상의 공백기를 가졌던 나는 현재의 연구를 통해 혹은 미래에 떠오를
새로운 아이디어로 어떤 값진 것을 성취할 수 있으리리라는 희망을 품고 있다"며 오늘도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관리자: 출처-좋은 생각 [06/28-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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